▲ 교육부, 교육청, 학교의 틈바구니에서 강제학습을 당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표현 중.


추모제 준비

  추모제를 하기 전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12일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모임을 갖고, 추모제 순서와 퍼포먼스 계획을 짰다. 피켓도 만들고..

  나는 웹자보와 전단지를 만들며 여러 날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직접 만든 건 없고 다 수정해서 썼는데, 시간은 왜 그리 많이 걸렸던지 참.. 현수막은 웹자보와 비슷하게 만들어 쓰기로 했다.

  추모제가 있기 3일 전인 수요일 아침에 얌얌과 나는 부산교육청 앞으로 갔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인시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마 되지 않아 교육청 경비가 귀찮게 굴었다. 실실 웃으면서 “나도 체벌금지 이런 것 찬성한다. 나도 학창시절 때 많이 맞았다. 막으려는 것 아니다. 그런데 학교 어디인지 좀 말해달라”하고 말하는 모습이란 참...(웃음) 얌얌과 나 둘이 같이 피켓을 들고 있던 적도 많았는데, 장학사들은 얌얌만 집요하게 공격했다. 왜 그런거지..


추모제 당일

  사무실에 들렀다가 YJ와 함께 전단지 인쇄를 하러 서면으로 갔다. 인쇄를 하고 퍼포먼스에 쓰일 꽃을 산 뒤, 사람들을 만나 같이 전단지를 나눠주며 홍보를 했다. 나는 너무 쑥스러워 제대로 나눠주지도 못했다. 피켓을 들고 서 있던 이카로스가 보다 못해 결국 나와 역할을 바꾸었다. 다시 전단지를 나눠줄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또 MH가 대신 나눠줬다. 나 정말 왜 이래..


추모제

  장학사들과 일부 교사들을 막기 위해 산 가면과 마스크. 아무도 가면은 쓰려 하질 않았다. 참살이가 “그래도 사온 사람이니 혼자라도 가면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나도 결국 가면의 불편함에 굴복, 마스크를 썼다.

  빔프로젝터 연결, 화면에 “Socialist International”의 로고와 “자유, 평등, 연대”라는 문구가 나왔다.

  이번 추모제에 어울릴 것 같아 내가 준비해 둔 것. SI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 그 ‘장미꽃을 들고 있는 손’ 로고를 참 좋아한다.

  첫 번째로 간디학교 몸짓패 ‘펴라’의 공연. ‘불나비’와 ‘희망은 있다’라는 음악에 몸짓을 보여줬는데,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정말 멋졌다. 공연을 보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참교육학부모회 연대발언 후에 퍼포먼스가 있었다. 메신저회의도 하고 꽤 오랜 시간 준비했는데, 괜찮았을까? 전교조의 연대발언 후에 킴의 자살한 청소년의 유서낭독. 정말 낭독을 잘했다. 음악도 좋았고..ㅋㅋ

  그 다음 YJ의 공연. 더콰이엇의 음악에 가사를 쓴 자작곡이었는데, 사람들 반응도 좋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관심을 많이 보였다. 다음에 부른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약간 가사를 빼먹기도 했지만.

  부산 청소년 반축제 기획단에서 발언이 있었는데, 그 동안 나는 ‘별별이야기’ 상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이 나오지 않아 당황. 사회자에게 한 번 더 발언시간을 가질 것을 요청했고, 다행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당황하며 문제를 고치느라 두 발언은 잘 듣지 못했다. ㅠㅠ

  ‘별별이야기’ 중 ‘사람이 되어라’ 상영. 지금도 학교에선 많은 학생들이 ‘대학가서 사람 되기 위해’ 모든 불합리한 일들을 참고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 추모제를 100%로 완성하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상 상영 이후 외케의 발언 다음에 MH의 통기타 공연이 있었다. 멋졌다. 사람들 반응도 좋고.. 나도 악기 하나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공굴리기 퍼포먼스. 초라하기 짝이 없는 페트병을 보며 약간의 죄책감(?). 밤마 씨가 공을 굴려 ‘체벌’, ‘입시’ 페트병들을 쓰러트렸다. 그후에 ‘꿈꾸지 않으면’을 다같이 부르며 끝내려고 했는데 다들 가사를 모르는 상황. 가사를 준비해 나눠줬어야 했는데..ㅠㅠ 그냥 음악만 틀고 끝냈다.

  추모제가 끝나고 난 뒤, 반축제 기획단과 함께 뒷풀이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썪은과 함께 집에 오면서 추모제를 생각해보았다. 5점 만점에 4.5점? 몇몇 실수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이런 일을 준비해본 것이기도 하고.. 그 후 며칠간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늘픔]

(* 늘픔님은 “청소년인권은 죽었다” 행사준비에서 많은 역할을 맡았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입니다.)



꿈꾸지 않으면
                       양희창 글
                       장혜선 곡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Posted by 오승희